다함이 없는 하늘의 샘보기
[고난 가운데, 말씀묵상의 능력]
고난에 처한 사람을 누가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까? 산산이 부서진 인생의 파편을 붙잡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그 어떠한 말과 도움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세상의 위로와 도움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소망이 있고,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이 소망은 '말씀'을 통해 내 안에 임하게 됩니다. 81~82절을 보면, 고난 가운데 있는 시편기자는 몹시 피곤하고 지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는 83절에서 자신이 뜨거운 불 위에 가죽부대처럼 연기에 그을리고 열기에 쪼그라들어 단단해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고백합니다. 보통 고난에 처하면, 성도나 불신자나 모두가 고통으로 절규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고난 중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견딥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하는 것'을 택합니다. 이 순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삶의 고백과 찬양으로 고백되어지는 것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들음의 믿음'에서 '바라보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일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두려움의 존재와 문제들을(홍해, 여리고) 향해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정면 돌파했습니다. 그 어떠한 기적과 승리의 징조가 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함과 인자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도 고난과 위기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다가(86절), 갑자기 찬양합니다. 대적들과 위기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이 모든 것들을 붙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만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91절) 성도는 시편기자처럼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면서, 주님의 말씀과 그의 주권은 영원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89~90절) 우리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89절)라는 고백처럼, 주의 말씀은 변함없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주의 은혜와 말씀의 신실함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가장 큰 능력이요,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유월절 신앙(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과 언약의 말씀을 잊지 않을 때, 성도는 비로소 독수리와 같은 '새 힘'을 얻어, 고난의 태풍을 넘어서서 하늘로 비상할 수 있게 됩니다.(91~92절) 믿음은 '인내'를 포함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소망의 말씀'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92절)는 시편기자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공감과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이 소망의 말씀을 받아 확신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새 힘'과 '지혜'를 받아 누리는 기쁨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약의 말씀이 성취되는 은혜의 현장에 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고난에 처한 사람을 누가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까? 산산이 부서진 인생의 파편을 붙잡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그 어떠한 말과 도움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세상의 위로와 도움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소망이 있고,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이 소망은 '말씀'을 통해 내 안에 임하게 됩니다. 81~82절을 보면, 고난 가운데 있는 시편기자는 몹시 피곤하고 지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는 83절에서 자신이 뜨거운 불 위에 가죽부대처럼 연기에 그을리고 열기에 쪼그라들어 단단해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고백합니다. 보통 고난에 처하면, 성도나 불신자나 모두가 고통으로 절규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고난 중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견딥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하는 것'을 택합니다. 이 순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삶의 고백과 찬양으로 고백되어지는 것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들음의 믿음'에서 '바라보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일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두려움의 존재와 문제들을(홍해, 여리고) 향해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정면 돌파했습니다. 그 어떠한 기적과 승리의 징조가 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함과 인자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도 고난과 위기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다가(86절), 갑자기 찬양합니다. 대적들과 위기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이 모든 것들을 붙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만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91절) 성도는 시편기자처럼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면서, 주님의 말씀과 그의 주권은 영원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89~90절) 우리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89절)라는 고백처럼, 주의 말씀은 변함없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주의 은혜와 말씀의 신실함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가장 큰 능력이요,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유월절 신앙(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과 언약의 말씀을 잊지 않을 때, 성도는 비로소 독수리와 같은 '새 힘'을 얻어, 고난의 태풍을 넘어서서 하늘로 비상할 수 있게 됩니다.(91~92절) 믿음은 '인내'를 포함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소망의 말씀'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92절)는 시편기자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공감과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이 소망의 말씀을 받아 확신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새 힘'과 '지혜'를 받아 누리는 기쁨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약의 말씀이 성취되는 은혜의 현장에 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묵상 소개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하늘의 샘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이 보이신 구원의 길을 따라갈 때, 그 '순종'의 길에만 다함이 없는 하늘의 샘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존중히 여길 때, 주님도 우리를 존중히 여겨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받으며 새김으로, 다함이 없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 묵상은 하늘샘교회 홈페이지에 담긴 이호석목사의 칼럼 중에 발췌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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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를 제공해 주신 하늘샘교회 이호석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하늘샘교회 홈페이지 http://www.heavenspring.co.kr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