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피하는 자보기
사백 대 일의 싸움
사백 대 일…, 이것은 갈멜 산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던 그 숫자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여호와의 선지자’ 사백 명과 역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미가야 선지자가 대결하던 이야기입니다. 때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길르앗 라못을 침공하려고 하던 무렵입니다(왕상22장).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자”고 요구했습니다.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을 모읍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올라가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사백 명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상했던지 여호사밧은 “이 외에 물을 만한 선지자가 또 없느냐”고 말합니다. 아합은 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길한 예언은 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한다고 대답합니다. 그의 이름은 미가야였습니다. 그래도 물어보자고 자꾸 재촉하는 여호사밧 때문에 아합은 할 수없이 미가야를 데려옵니다. 미가야는 사백 명의 선지자들과 정반대로 대답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고 아합 왕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도 그렇고 미가야도 그렇고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반대의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면 결과는 분명합니다. 1대 1이나 10대 1도 아니고, 자그마치 400대 1입니다. 게다가 기왕이면 잘될 것이라는 예언이 좋지 않겠습니까.미가야는 왕의 명령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실제로 연합군은 전쟁에서 보기 좋게 패배합니다. 아합은 혹시나 해서 왕복을 벗고 졸개로 변장하여 전쟁에 나가지만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문제입니다. 4백 명 아니라 4천 명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가짜라면 소용없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진짜이면 그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숫자에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아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건하다고 하는 여호사밧은 또 어떤가요. 그도 숫자에 속아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이 진리인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내 기분에 맞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에 익숙해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4대 1이면 충분합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은 확률 싸움이 아닙니다. ‘진리’ 아니면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영’ 아니면 ‘거짓말 하는 영’입니다. ‘진짜’ 아니면 ‘가짜’입니다. 숫자노름에 속지 마십시오. 눈을 부릅뜨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사백 대 일…, 이것은 갈멜 산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던 그 숫자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여호와의 선지자’ 사백 명과 역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미가야 선지자가 대결하던 이야기입니다. 때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길르앗 라못을 침공하려고 하던 무렵입니다(왕상22장).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자”고 요구했습니다.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을 모읍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올라가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사백 명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상했던지 여호사밧은 “이 외에 물을 만한 선지자가 또 없느냐”고 말합니다. 아합은 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길한 예언은 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한다고 대답합니다. 그의 이름은 미가야였습니다. 그래도 물어보자고 자꾸 재촉하는 여호사밧 때문에 아합은 할 수없이 미가야를 데려옵니다. 미가야는 사백 명의 선지자들과 정반대로 대답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고 아합 왕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도 그렇고 미가야도 그렇고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반대의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면 결과는 분명합니다. 1대 1이나 10대 1도 아니고, 자그마치 400대 1입니다. 게다가 기왕이면 잘될 것이라는 예언이 좋지 않겠습니까.미가야는 왕의 명령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실제로 연합군은 전쟁에서 보기 좋게 패배합니다. 아합은 혹시나 해서 왕복을 벗고 졸개로 변장하여 전쟁에 나가지만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문제입니다. 4백 명 아니라 4천 명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가짜라면 소용없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진짜이면 그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숫자에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아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건하다고 하는 여호사밧은 또 어떤가요. 그도 숫자에 속아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이 진리인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내 기분에 맞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에 익숙해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4대 1이면 충분합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은 확률 싸움이 아닙니다. ‘진리’ 아니면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영’ 아니면 ‘거짓말 하는 영’입니다. ‘진짜’ 아니면 ‘가짜’입니다. 숫자노름에 속지 마십시오. 눈을 부릅뜨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말씀
묵상 소개
이 글은 한강중앙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유요한 목사님의 ‘목회서신’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본 묵상을 통해 우리의 참된 도움과 치유자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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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를 제공해 주신 한강중앙교회 유요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묵상내용에 관해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한강중앙교회 홈페이지 http://hangang.onmam.com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